칼럼

HOME>같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칼럼

제목

[조성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폐스펙트럼장애,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등록일

2019.04.01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후에 추가적으로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했습니다.
짧게 줄여서 '소아정신과'라고 하지요.
소아정신과 의사가 주로 만나는 아이들은 언어장애,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ADHD, 틱/뚜렛장애 등입니다.
빠르면 18개월에서부터 말이 느리다, 상호작용이 잘 안된다는 증상을 가지고 방문합니다. 
오실 때 보면 부모님들이 얼굴에 걱정과 근심이 가득합니다. 

"우리 아이 좋아질 수 있나요?"

경우에 따라서는 물어보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없이 언어치료를 하고, 놀이치료를 하고, 인지치료 등을 하면서 1년, 2년 시간이 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등의 장애진단을 하게 됩니다.

"대체 왜 이런 병에 걸린 것이죠? 제가 사랑을 주지 않아서인가요?" 




사진_픽셀



맨 처음 자폐성 장애는 정신분열증의 한 증상으로 인식했었습니다. 
정신분열증을 자폐적 상태라고 묘사했던 Eugen Bleuler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처음 이야기한 것은 Leo Kanner라는 소아정신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는 아동들에게 유아기 자폐증(infantile autism)이라는 병명을 붙였습니다.
이것이 1943년입니다.
이때만 해도,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의 한 극단적 종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라서도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안 되고 기이한 행동이나 언어를 구사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이러한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정신분석적 이론이 등장합니다. 
1950년대입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상류층, 고학력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 잘 생긴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상류층, 고학력 엄마들이 아이에게 냉담하고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냉장고 엄마(refrigerator mother)'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학계뿐 아니라 대중매체를 타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둔 엄마들은 취조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정말로 사랑스러웠나요?' 

이런 인터뷰를 몇 시간씩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참 잔인하죠?
아이가 아픈 것이 엄마 탓이라고 여겨졌고, 엄마들이 죄인 취급을 당했다는 것 말이죠. 

그 이후 의학이 발달하면서,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애착의 문제, 양육의 문제가 아닌 뇌의 질환, 생물학적 질환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유전성 질환입니다." 라고 말하면 또다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 부부는 아무도 자폐성 장애가 없어요." "우리 집안에는 아무도 자폐성 장애가 없어요." 라고 말입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엔 누군가 죄책감을 떠안게 됩니다.
그것이 엄마가 됐든, 아빠가 됐든 말입니다. 




사진_픽셀



유전성이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누군가에게 물려받았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유전자 수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유전자는 어디선가 온 것 아닐까요?

현재도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일으키는 유전자에 대해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주 많은 유전자가 그 원인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어느 유전자도 확실하게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일으킨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유전자가 언제 문제가 되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정자의 감수분열 시 문제인지, 난자의 감수분열의 문제인지, 수정란 착상 후 분열이 일어났을 때의 문제인지도요.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서는 '운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모른다는 이야기를 참 장황하게 썼습니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당신의 잘못도, 당신의 배우자의 잘못도, 집안 친척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죄책감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되고 더 많은 것들이 밝혀지게 되면 좋겠습니다.
원인을 알면 완치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겠지요.
그날이 어서 오길 저도 꼭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옆에서 최선을 다해서, 가장 필요한 것부터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